[문화와 역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깨운 500년의 눈물… 태백산 능선에 깃든 단종의 혼

해발 1,500m 망경대 뒤편 ‘단종비각’, 비극적 군주에서 태백산 산신으로
탄허스님 친필 비문과 지역민의 정성이 일궈낸 현대사적 기록

- 영월 유배지 넘어 태백으로 이어진 단종의 기억,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부활

 

[태백=양호선 기자] 최근 조선의 비극적 군주 단종의 삶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화제를 모으면서, 그의 영혼이 잠들었다고 전해지는 태백산의 ‘단종비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기록된 정사와 민간의 전설이 교차하는 이곳은, 500년 전 어린 임금의 슬픔을 태백의 영험한 기운으로 승화시킨 상징적인 장소다.

 

■ 태백산 험준한 능선 위, 17세 소년 왕을 기리다

태백산 망경대 뒤쪽 능선, 구름조차 쉬어가는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단종비각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비각 내부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새겨진 비석이 안치되어 있어, 이곳이 단종의 영혼이 머무는 성소임을 알리고 있다.

 

이 비문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학승인 탄허스님의 친필이기 때문이다. 유·불·선을 아우르는 사상가였던 탄허스님의 글씨는 비각에 깊은 상징성을 더하며, 태백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참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전설이 된 역사: “나는 이제 태백산 산신으로 가노라”

역사는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된 후 1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태백의 민초들은 왕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역 전승에 따르면, 단종에게 머루와 다래를 공양하던 추익한이 어느 날 고갯길에서 백마를 타고 가는 단종을 만났다고 한다. 행방을 묻는 질문에 단종은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고, 그 시각 영월에서는 단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단종이 육신을 벗어던지고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음력 9월 3일마다 이곳에서 정성스레 제를 올리며 지역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 1955년의 정성, 2026년 대중문화로 되살아나다

현재의 비각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망경사 주지였던 박묵암 스님이 중심이 되어 건립했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역사적 비극을 위로하고자 했던 민초들의 정성이 오늘날의 단종비각을 만든 셈이다.

 

태백시 관계자는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영월의 유배지가 단종의 고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태백산 단종비각은 그 고통을 신앙과 전설로 승화시킨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영화가 일시적인 흥미를 넘어, 기록된 역사와 민간 전설이 어떻게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진다”

단종비각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의 찬탈로 희생된 어린 군주를 잊지 않으려 했던 민초들의 ‘집단적 기억’의 산물이다. 1698년 숙종에 의해 왕호가 복위된 것이 국가적 명예회복이었다면, 태백산 산신 전승과 비각 건립은 백성들이 그를 가슴속에 복위시킨 민중적 명예회복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강릉과 삼척 등 인근 지역에서 행정 통합과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역사적 가치를 현대적 콘텐츠로 풀어내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태백산 단종비각이 영화를 통해 불러일으킨 이 뜨거운 관심이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 자산을 재평가하고 가꾸는 지속적인 동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소통투데이 양호선 기자 |